3월의 하얀 눈이 봄볕에 녹고 있던 그 날,

제 육신이 법정에 매여 있던 그 시간,

스님께선 무소유의 淨土로 떠나셨습니다.


배웅도 못해드린 것이 못내 죄스러워
뒤늦게 이런 글이라도 올리면, 마음의 짐이라도 좀 덜어질까 싶었습니다.


탐욕과 거짓에 물든 권력이 사람들의 삶을 거침없이 유린하는 이 땅엔 저희들만 남았습니다. 이제 어떤 스승에게 청빈과 상생의 지혜를 구해야 할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돌아보니 스님을 처음 뵈었던 것이 1970년대 초, 강원용 목사님과 함께 하셨던 종교간 대화의 자리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스님과 목사님은 종교를 넘나드는 소통의 장을 만들고 싶어 하셨고, 마침내 한국 최초로 ‘6개 종교 지도자’들의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기도 하였습니다.


스님께선 크리스찬 아카데미의 종교간 대화에 어느 분보다 열심이셨습니다. “사람을 갈라놓는 종교는 좋은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종교가 아니다.” 스님의 말씀입니다.


스님께선 속세의 불의에는 두 눈을 부릅뜨셨습니다. 각계 인사 일흔 한 분이 참여했던 ‘민주회복국민선언’에 불교계에선 유일하게 서명하셨습니다. 함석헌, 장준하 선생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과 유신 철폐운동을 이끌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던 스님께서 ‘인혁당 사건’으로 8명이 사형을 받은 뒤 산으로 떠나셨습니다. "박해를 받으니 증오심이 생긴다. 증오심은 마음의 독이다.” 사람을 증오하지 않기 위해 은둔하신 스님을 뵈러 송광사를 찾았던 기억이 지금 생각납니다.


송광사 산길을 따라 걷다보니 허름하고 조촐한 암자 한 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스님께선 바람소리 청정한 그 곳에서 손수 밥을 지어주셨습니다. 그러던 차에 밖에서 느닷없이 “어처구니가 없네”라고 하는 말이 들렸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하던 저희들 에게, “어처구니는 맷돌의 손잡이다.” 라고 일러주셨습니다.

아! 그래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이 나왔구나....


‘어처구니’의 의미에는 ‘상상 밖의 큰 사람’이라는 뜻도 담겨 있음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스님께선 이 시대 이 나라의 ‘어처구니’이십니다. 어처구니를 잃은 중생들이 스님의 법체를 따라 송광사로 운집해 눈물짓고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스님을 이승으로 다시 모시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속인의 욕심일 뿐이겠지요.

떠나신 자리가 너무나 크고 쓸쓸합니다. 혹시라도 누가 될까 병문안도 못 드린 채 스님을 보내드린 제 처지가 한없이 서글픕니다.


스님,

진실이 거짓의 사슬에서 자유롭게 풀려나는 날, 송광사 뒷산 불일암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맑은 바람 소리와 개울물 소리로 맞아주십시오. 향기로운 가르침으로 이 어처구니없는 세상의 탐욕과 증오를 말끔하게 씻어주십시오.


스님의 극락왕생을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2010년 3월 14일
한명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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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사소한 생각들



하나. 아무리 추운 겨울도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아직 추위는 가시지 않았지만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는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아무리 매서운 동장군도 시간의 흐름까지 얼려둘 순 없습니다.

며칠 동안 두문불출 집 밖을 나가보지 못했습니다.
책과 자료와 내 살아온 날들과 씨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부터 책을 내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살아 온 삶이 그렇게 자랑스럽지도 내세울 것도 없다는 생각에 묻어 두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들을 파 내야할 시간이 되었나 봅니다.

기실 몇 해 전부터 지난 일들을 조금씩 되새겨 둔 원고가 있었습니다.
제가 살아 온 삶들을 돌아보고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겪은 깊은 슬픔이 쉽게 저를 제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한 달, 두 달이 멍하게 흐르고 덮어 둔 작업 원고에는 먼지가 앉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연말 정말이지 길을 걷다 갑자기 날아 온 돌멩이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어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요.

하지만 돌을 던진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이 알고
그 목적이 또렷이 보이자 오히려 없던 힘마저 솟아납니다.
해야 할 일이 분명함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러자 돌아가신 두 분 어른의 자취도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고
뜻을 이어 제가 해야 할 일들이 가슴에 속에 또록또록 새겨집니다. 
작업 원고에 먼지를 털어 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곧 작업이 끝나고 부끄러운 작은 책 한 권이 나올 예정입니다.
저의 지나 온 행장들이 행여 장독대를 덮어 두는데 쓰이게 되더라도
그저 양지바른 햇살이나 쬐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는 2월 26일 금요일 출판기념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봄이 온다는 믿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봄 마중이나 가시지요.



둘. 국민은 준비되어 있다

올해는 전국적으로 지방선거를 치르는 해입니다.
그 의미에 대해서 굳이 길게 말씀드리지 않아도 모두들 아실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보다 승리가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개별 후보들 간의 경쟁이면 여당이 이기고,
야권 단일 후보면 민주진영의 승리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국민은 MB정부를 심판할 준비를 하고 있으나, 정치권은 그 준비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민주진영의 승리를 위해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방법에 대하여 고민 중입니다.
지점은 분명합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속설을 극복하는 일입니다.
그 안에서 제가 할 일을 찾겠습니다. 

 

셋. 26일은 아주 바쁜 날 될 것 같아


오는 26일은 제게 참 의미 있는 날입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책의 출판기념회도 예정되어있고,
제 재판의 두 번째 공판 준비기일이기도 합니다. 
조선일보와 정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 변론 준비기일도 예정되어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혼신의 힘을 기울이려 합니다.
진실이 함께하고 있으므로 저는 언제나 당당합니다.


 

 2010년 2월8일  한명숙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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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안녕하세요, 한명숙입니다. 


내일이 성탄절이네요. 모두들 즐거운 계획 세우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예수 탄생의 의미가 모두에게 사랑, 평화, 축복의 의미로 따뜻하게 다가가길 소망해 봅니다. 

저는 지금, 이제껏 인생에선 겪어보지 못한 어처구니없는 일로 성탄절을 맞지만, 하나님이 제게 주신 시련의 의미를 묵상과 기도로 새겨보고 있습니다. 

성탄절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조차 훗날 하나님이 주신 시련의 십자가를 ‘인간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감당하셨거늘, 하물며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인 제가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시련을 감히 피할 수 있을까요. 

지금의 시련을 통해 저를 더 강하게 키우려는 하나님의 뜻으로 이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합니다. 

처음엔 제 스스로 자부하는 ‘진실의 힘’을 믿고 당당했지만, 이젠 하나님이 주신 시련의 의미를 생각하며 당당해지려 합니다. 

기도를 드리며 마음에 문득 와 닿는 시 한편이 떠올라 소개를 드리면서 성탄 인사를 대신할까 합니다. 베드로시안의 시 ‘그런 길은 없다’입니다. 


그런 길은 없다 

아무리 어둔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가 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 
나의 어두운 시기가 
비슷한 여행을 하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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