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눈물 흘리지 마십시오.

당신은 목숨보다 국민이 더 소중한 분이셨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립니다.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선생’을 잃은 우리들의 슬픔이 너무나 깊어 울음조차 허투루 나오지 않습니다.

아! 김대중 대통령님. 이제 불러도 대답이 없으실 대통령님.
당신께서 세상을 향해 들려주시던 단호한 외침과 그 맑고 환한 너털웃음을 이제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김대중 선생님! 당신은 우리 마음속에, 제 마음속에 영원히 잊혀 지지 않는 ‘선생’ 이십니다. 국민을 향한 강한 사랑의 의지로 병마쯤은 훌훌 털고 일어나시어 다시 우리 곁으로 와 주실 줄 알았습니다. 조금이라도 우리 곁에서 우리 모두의 ‘스승’이 되어 주시길, 정정(淨淨)한 말씀 몇 조각이라도 더 보태어 주시길 그렇게 소망했지만 당신께서는 결국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국민이 불쌍하다”시며 흘리시던 눈물이 아직 우리들 마음속에 마르지 않고 있는데 어찌 이리 서둘러 가셨습니까?
밤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신다더니 당신께서 그렇게 걱정하시던 국민이 눈에 밟혀 차마 어떻게 눈을 감으셨단 말입니까?

당신께서 염원하시던 “자유가 들꽃같이 만발하고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은 아직 오직 않았습니다. 들판은 속박의 독초들로 메말라가고, 강물은 독선의 탁류로 더럽혀져 있습니다. 희망의 등불을 잃은 어두운 세상 속에서 우리들의 아픈 눈물이 이 땅위에 강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평생을 고난과 박해의 멍에를 짊어지고 우직한 소처럼 묵묵히 역사의 밭을 갈아오셨습니다. 불의가 판치던 이 땅에서 불의에 맞서 당당히 싸우신 당신은 진정 깨어 있고 행동하는 양심이었습니다.

독재자들은 당신을 겁박하고 회유하다 못해 죽이려고 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내 이 민족, 이 나라가 사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당신을 던져 죽음을 선택하실 때 마다 죽어가던 이 땅의 민주주의와 평화가 되살아났습니다. 당신은 목숨보다 국민이 더 소중한 분이셨습니다.

당신은 증오를 화해와 용서로 바꾸었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내미신 화해의 손길이, 진정 국민을 사랑하는 그 뜨거운 단심이 당신을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단 한 번의 정치 보복도 없는 화해와 용서의 역사를 이 땅에 만드셨습니다. 당신은 증오를 사랑으로 녹여내는 가슴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당신께서 만드신 화해와 용서의 역사가 얼어붙은 한반도를 녹이고 남북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런 당신께 세계는 노벨평화상을 수여했습니다. 하지만 수상식 날 당신은 그 모든 영광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통일을 위해 희생한 동지들과 국민께 돌렸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겸손한 분이셨습니다. 

또한 당신은 언제나 사회에서 소외되고 아픔을 안고 사는 서민을 사랑했습니다. 가난한 자와 차별받는 여성의 인권을 위해 누구 보다 앞장 서 일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국민을 위해 평생을 희생해 오셨습니다. 삶의 마지막까지 국민을 위해 싸우셨습니다. 당신의 그 열정이 씨알이 되어 대한민국 골골에 흩뿌려져 있습니다. 그 씨알이 지금 우리 가슴에 자라 희망을 위해 나아가는 나무의 새싹이 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이제 더 이상 눈물 흘리지 마십시오.
더 이상 아파하지도 마십시오.

당신께서 그리 놓아주시기 힘들어 하셨던 노무현 대통령님과는 만나셨습니까? 먼저 가신 아우님이 형님을 반가이 맞아주시던가요? 대통령님,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눈물과 아픔을 잊고 평안히, 평안히 쉬십시오.

이제 우리가 대통령님을 대신하여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깨어있는 양심, 실천하는 양심으로 당신께서 남기고 가신 희망의 나무를 꽃 피우겠습니다.

그 나무 자라 이 땅에 민주주의와 평화가 만발하고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날...

당신께서 다시 오신 줄 알겠습니다.

   

                               한 명 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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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시더라도
마음은
늘 당신과 함께 합니다.

2009년 8월 18일
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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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바위 위로
수백만의 부엉이가 깨어나 날아오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유골을 햇살 따뜻한 봉화산 기슭에 안장했습니다. 비로소 그 분과의 이별을 실감합니다.

49재를 마친 후, 다소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현관에 들어서자 형형색색의 수많은 부엉이 인형들이 커다란 눈으로 저를 반깁니다. 저는 부엉이 인형 수집가입니다.

어두운 밤에 빛을 밝히는 ‘지혜’의 새.
그런 부엉이가 좋아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한 것이 10년이 지나 어느덧 200여 마리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한결같이 부엉이 인형은 제 삶의 입구를 말없이 지켜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그런 부엉이를 보기가 두려웠습니다. 슬쩍 눈길만 스쳐도 가슴이 아립니다.
왜 하필이면 ‘부엉이 바위’였을까요?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님의 잔잔한 미소가 커다랗게 뜬 부엉이 인형의 눈망울에 서글프게 떠오릅니다.

당신께서 오르신 부엉이 바위가 천근 무게로 가슴을 짓누릅니다. 차마 어떻게 오르셨습니까?
몸을 던질 각오로 오르셨을 그 한 발, 한 발 질곡의 무게를 생각하자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삶의 마지막 발걸음을 헤아리는 그 심정은 또 얼마나 두렵고 힘이 드셨습니까? 당신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처절하도록 서럽게 외로우신 분이었습니다.



"난 자네들이 다 떠난 줄 알았네"

2006년 12월 29일, 총리 재임시절의 일입니다. 대통령께서 국정에 유난히 힘들어 하셨을 때 총리 공관으로 저녁초대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이창동 감독과 문성근 씨 그리고 2002년 대통령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몇 분의 문화계 인사들이 함께 초대됐습니다.

그 당시는 참여정부가 추진해온 주요 정책을 둘러싸고 야당과 보수 세력은 물론 대통령을 지지했던 진보개혁세력 마저 각자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여론이 몹시 악화되어 있던 때였습니다.

정치와 문화에 관한 많은 대화를 나눈 후 네 사람을 지긋이 바라보시던 대통령께서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입을 여셨습니다.

“난 자네들이 다 떠난 줄 알았네.”

순간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그 말씀 속에 자신을 비판하는 개혁세력에 대한 섭섭함과 원망보다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책무를 감당해야 하는 지도자의 고뇌와 고독 그리고 지지자들에 대한 미안함이 배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 노무현이 아닌, 대통령 노무현의 아픔과 상실을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보와 보수가 함께 하는 나라"

▲ 2008년 5월 7일 노무현 대통령과 봉하마을 뒷산으로 함께 가는 길

 퇴임 후 봉하마을로 대통령님을 뵈러 갔을 때 당신은 이런 고백을 들려주셨습니다.
 
“권력을 쥔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진보를 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의 경영을 위해서 현실을 도외시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진보와 보수가 함께 하는 나라이기 때문이죠.”
“나는 국민통합을 말했지만 결국 국민을 통합하지는 못했어요. 현실의 제약과 벽이 너무 견고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으로 살아 온 5년 동안 느끼셨던 절체절명의 고독.
진보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지만 보수를 껴안고 진보와 보수의 협력과 조화를 고민해야만 했던 현실.

국민통합을 그처럼 갈망했지만, 국민이 분열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의로운 정치인 노무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당신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당신을 욕하고, 야당과 보수언론은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침소봉대하며 성마르게 헐뜯고 할퀴어왔습니다.

당신은 모두가 떠난 황량한 빈들에 홀로 서서,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모진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오셨습니다.



"제가 책임을 져야죠"

대통령님께서 검찰에 출석하시고 며칠 후인 5월 2일, 당신을 마지막으로 뵈었습니다. 감내하고 계신 아픔이 너무도 서러워 힘내시라 손이라도 잡아 드릴 생각으로 봉하마을을 찾았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국민에 대한 죄송스러움으로 깊은 자책감에 빠져계셨습니다. 불면으로 인해 퀭하신 눈으로 제게 말씀하셨지요.

“결국 모든 것이 수신제가하지 못한 제 탓입니다. 제가 책임을 져야죠.”
 

아!
저는 당신께서 말씀하신 ‘책임’이 초개와 같이 당신의 몸을 던지는 일인 줄은 몰랐습니다.
백척간두 아래로 자신을 던져 세상의 부조리에 항거하려는 단심(丹心)인 줄은 차마 알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부산대 병원으로 대통령님을 다시 만나러가던 날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지켜드리지 못한 저의 나약함이 죄스러워 차마 영정 속 당신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고백하거니와 저 역시 당신께서 ‘다 떠난 줄 알았던’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당신이 검찰과 언론의 돌팔매질을 묵묵히 견뎌내고 계실 때, 저는 침묵했습니다.
잔인한 세상의 패악과 폭력에도 항변하지 못하고 가슴만 치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부엉이 바위' 위로 깨어 있는 수백만의 부엉이가 날아오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하지만 이제 그 부끄러움이 제 가슴에 단단한 다짐이 되어 박혀있습니다.
이제 두 번 다시 국민께, 그리고 당신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희생이, 당신의 마지막 대속(代贖)이 떠난 줄 알았던 국민의 발걸음을 돌려세웠습니다.
다 떠난 줄 알았던, 뿔뿔이 흩어지고 산산이 깨어진 줄 알았던 사람들이 진실과 정의를 지키지 못한 참담한 후회를 가슴에 안고 바람이 되어 다시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대통령님은 ‘국민이 생각하는 만큼 역사는 진보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당신께서 오르신 그 부엉이 바위 위로 자각하고 깨어 있는 수백만, 수천만의 부엉이가 다시 날아오를 것입니다.


49재를 끝내고, 저는 거실의 부엉이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참회의 심정으로 흙으로 빚어진 부엉이 촛대에 불을 밝혔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후회를
진실한 반성과 굳센 연대의 용광로 속에 남김없이 태워
이 땅을 살아갈 사람들의 희망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은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2009년 7월 12일

한 명 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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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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