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오늘 생애 두 번째로 법정에 섰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투옥되어 생사를 넘나드는 고문을 당하고 법정에 섰던 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때는 독재권력 앞에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상황이 무섭고 두려웠지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서민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신명나게 일하다 잡혀왔기에 수의를 입은 제 자신이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법정에 선 저는 한없이 서글프고 착잡한 심정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시련에 부딪혔습니다. 독재의 시절에서 목숨을 걱정하기도 했고, 때로는 지독한 가난도 겪었습니다. 그 때마다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한 번도 타협하거나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시련을 통해 저는 끊임없이 단련되었습니다. 숱한 시련들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다만 주어진 삶을 진실 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세월이 지금의 한명숙을 만들었다고 자부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맞닥뜨린 시련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검찰 기소에 의해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뒤집어 쓴, 전 국무총리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부패와 비리, 제 인생에는 결코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말이,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 제게 일어난 것입니다. 이전처럼 저의 신념과 행동의 올바름을 주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뇌물수수’라는 모두가 경멸해마지 않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법정에서 싸워야 하는 구차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히 말씀드리건대, 저는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삶과 양심을 돈과 바꿀 만큼 세상을 허투루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가난해도 항상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한때나마 제가 가졌던 지위를 자랑하거나 허세를 부려 본 바도 없었습니다. 이 사건이 보도된 후 저는 국민을 향해서 “인생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저에게 단순한 언어적 수사가 아닙니다. 저의 살아온 삶 전체를 건 절규였습니다. 저에게는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화려한 경력보다는 저를 지탱해 온 삶의 진실이 더욱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민전시 운우풍뢰님 제공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검찰의 공소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5만 불을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의 눈을 피해 슬쩍 돈을 받아 챙기는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할 줄도 모릅니다. 또 남의 돈을 스스럼없이 용돈처럼 받아쓰는 문화에 익숙하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국가 공공시설인 총리공관에서 벌어진 오찬 자리에서, 비서관과 경호관들이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는 그런 자리에서 돈을 받는다는 것은 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2006년 12월 20일 총리공관 오찬은 정세균 산자부 장관의 사의표명 후 지인들끼리 가진 송년회 성격의 조촐한 점심식사 자리였습니다.


12월12일 국무회의 후, 정세균 장관은 총리집무실을 방문하여 장관직을 사임하고 당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하여 상의하였습니다. 이후 대통령과 의논하여 후임 장관까지 내정되어 있었습니다. 12월 20일 오찬 시에 정 장관은 내부적으로는 이미 퇴임을 확정한 상태였고, 12월29일 공식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퇴임하는 장관에게 총리가 인사 청탁을 한다는 일이 상식에 맞는 일이겠습니까? 정세균 장관과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오찬자리를 마련했다는 검찰의 사건구성 설정 자체가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저는 국무총리 임기 중에 국회의원 신분을 겸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활동하는데 돈이 필요했다면 후원회를 통해 모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총리 재직 중 논란을 피하기 위하여 아예 후원회 계좌를 폐쇄하기까지 했습니다. 특별히 총리로서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 이외에 따로 돈을 모아서 쓸 만한 필요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제 인생을 통해, 최초의 여성총리라는 지위로 인해 원하든 원치 않든 민주주의를 이룩한 사람들에게, 여성계에게, 상징적 인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도덕성을 잃으면 이것은 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저를 바라보고 온 사람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입니다. 저는 그 책임감과 내가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 소명감을 매순간 자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또한 한국 최초의 여성총리로서 제가 일을 잘하고 깨끗해야만 후배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고 자라나는 우리 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국무총리는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모든 공무원을 통할하고 지휘하는 자리입니다. 총리의 자세가 흐트러지면 공무원의 기강도 무너지고, 따라서 나라의 질서도 어지러워집니다. 저는 이런 막중한 책임감과 중압감으로부터 한시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해 왔습니다. 그런 저에게 총리공관에서의 5만 불 뇌물 수수라는 혐의는 너무나도 부당하고 악의적인 날조입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민전시 운우풍뢰님 제공

저는 그동안 검찰 소환에 불응했고 수사 과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했습니다. 그렇게 떳떳하면 검찰 조사에 적극 응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묵비권은 피의자의 권리이기도하지만, 그보다는 당시의 부당한 검찰 수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저에 대한 수사는 조사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언론플레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익명의  가면을 쓴 누군가에 의해서,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심지어는 수사가 종결되기도 전에 제 혐의 내용이 샅샅이 구체적으로 때로는 내용을 조금씩 바꾸어가면서 언론에 유출되었습니다. 일부 언론의 보도 속에서 저는 이미 범죄자가 되어 있었고 저의 인격과 명예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검찰조사는 진실을 밝히는 공정한 절차가 아니라 요식절차에 불과했습니다.


저의 권리를 전혀 보장하지 않는, 피의사실을 조금씩 흘림으로써 저에 대한 언론의 매도를 이끌어냈던 부당한 수사에 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뇌물수수’라니 이 무슨 해괴한 날조입니까? 이것은 저 한명숙의 살아온 삶 전체를 난도질하는 음해입니다. 참담한 심정에 가슴이 무너집니다.


하지만 저는 국정의 중심에서 장관과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서 사법부의 권위를 존중하는 마음에는 추호의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에 응하였고 다만 부당한 수사에는 여전히 협조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하기 위해 피의자로서 당연한 권리인 묵비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저는 이제 법정에 섰습니다. 법 절차의 정당성과 사법부의 권위를 존중하며, 본 법정에서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성실히 재판에 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제가 곽영욱씨를 알게 된 것은 2000년, 그가 당시 어려웠던 여성계를 선뜻 도와주었던 일이 인연이 되어서입니다. 그 뒤로 그저 기업을 잘 운영하는 기업인 정도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알고 지냈을 뿐, 어떤 청탁을 서로 간에 할 정도로 허물없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그가 저에게 5만 불의 뇌물을 주었다는 진술을 했다는 사실에 처음엔 너무도 경악했고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가 검사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병약하고 공포에 내몰려 있었습니다.


“살려 주세요 검사님, 저 죽을지도 모릅니다.”라고 애원하는 처절한 모습을 봤습니다. 한명숙 표적수사에 얼마나 모진 고초를 당했으며 얼마나 재산과 생명의 위협을 느꼈으면 그런 터무니없는 거짓진술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인간적으로는 안타깝고 동정이 갔습니다. 이러한 궁박한 상황에서 그의 약점을 잡아 받아낸 진술 하나 만을 가지고 저를 몰아붙이고 있는 검찰의 수사는 재판과정을 통하여 그 허구가 명명백백히 밝혀지리라 믿습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지금 이 순간, 살아온 모든 인생을 걸고 제가 평생을 지켜온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죄의 유무를 따지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살아 온 삶 전체를 심판받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제가 가진 재산이라곤 지금까지 살아 온 삶 밖에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듯 저 역시 살아 온 삶이 소중합니다.


저는 신앙인으로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직 진실만을, 양심의 소리만을 말하겠습니다. 제가 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는 일은 난감하고 가슴 답답한 일입니다만, 진실한 마음가짐으로 재판에 최선을 다해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정의와 공평의 눈으로 진실을 밝혀내실 판사님의 혜안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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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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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숙 지음/ 신국판 / 254쪽 / 12,000원 / 2010년 2월 26일 초판 1쇄 발행
  • ISBN 978-89-89571-64-3 03810
  • 행복한책읽기 펴냄




한명숙 전 총리,‘시련의 한복판’에서 펜을 들다


한명숙 전 총리가 생애 첫 자서전을 냈다.

두 번의 국회의원과 두 번의 장관직(여성부, 환경부)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총리직 수행을 끝으로 조용히 자연인 한명숙으로 돌아가려 했던 한 전 총리가 『한명숙』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딴 자서전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노무현, 김대중 두 대통령의 서거 이후 깊은 슬픔 속에서도 묵묵히 전직 대통령의 유지를 잇는 일에만 몰두해오던 그가 펜을 들고 세상을 향해 다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이 책 『한명숙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진실’ 이란 말에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진실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다른 수식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지금 저에게 진실을 설명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난감합니다. 이미 제 삶과 명예에 잔뜩 먹칠을 해 놓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진실을 보여줄 것인가. 결국은 제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명숙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진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한명숙이란 이름에 흠집을 내놓은 사람들을 향한 변명이 아닙니다. 이 글은 저들의 조작과 음해에도 저를 믿어주고 흔들림 없이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향한 대답입니다. ‘세상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을 삶으로 증명하다


이 책에는 한 총리의 지나온 삶이 5부로 나뉘어 담겨 있다.

1부 결혼, 그리고 긴 이별의 시작에는, 사업가인 아버지와 간호사였던 어머니가 꾸리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평양에서 서울로 피난을 내려오면서부터 겪게 된 가난과,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남편이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으로 가게 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2부 결핍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감옥에 있는 남편의 옥바라지와 더불어 6남매 중 장녀로서 친정의 살림을 책임지기 위해 생업 일선에 나서는 상황이, 3부 무소의 뿔처럼 홀로 서다에는 처음에는 직장 일로서 시작한 ‘크리스챤아카데미’ 활동을 통해 서서히 이 나라의 사회문제와 여성문제를 자각하게 되고, 구습과 열배감에 젖어 있는 여성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여성 사회운동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 과정과 그 활동으로 인해 시국사범으로 감옥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당하지만, 오히려 그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며 자신을 더 단단하게 단련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4부 낡은 시대가 무너지는 소리에는 13년 반의 형기를 마치고 나온 남편과 재회한 후 가족법 개정운동과 민우회 활동을 통한 다각적이고도 체계적인 여성운동을 전개하여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여성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지막 5부 한명숙 정치인이 되다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부름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여성부, 환경부 장관을 거치며 직면했던 문제들과 이를 풀어나가는 대화와 이해의 해결방식, 그리고 한명숙 특유의‘부드러운 열정의 리더십’을 보여준다.

그리고 부기된 <한명숙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는 한명숙에 대해 잘못 알려져 있거나 세간에 드러나지 않아 오해를 사는 몇 가지 편견들에 대해 짚어준다.





■ 추천의 글

어둠이 가시지 않은 80년대, ‘여성학특강’에서 만난 한명숙 선생님, 참 멋져 보였습니다. 그런데 13년이나 옥바라지를 하셨고 당신도 수감된 적이 있다는 걸 알고는, 그저 눈을 질끈 감아야 했습니다. 다시 사람마다 삶이 무거운 시대, 우리를 감싸 안아 일으켜 세우는 한 총리님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이정희 민노당 국회의원

 

공자가 <논어>를 통해 크게 경계한 것이 바로 교언영색(巧言令色)이다. 화려한 말과 꾸민 표정으로 짐짓 거짓을 진실인 양 대하는 태도를 불인(不仁)이라 여긴 것이다. 대개 정치인들의 자서전은 이 범주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하지만 한 전 총리의 글은 이 점에서 우선 다르다. 말과 뜻이 일치하고 그 뜻의 바탕이 온유함에 있기 때문이다.

-박경철(의사 경제평론가)

 

말과 글 모두가 사람을 위해 생겨난 것, 그러므로 어떤 글이나 말도 사람의 가슴을 앞서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총리님의 글에서 인간의 따뜻한 가슴을 느낍니다.

-김제동(방송인)

 

일을 하며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주부입니다. 삶이 무척 힘들게 느껴지곤 했는데 한 총리님 자서전을 읽으니 부끄럽습니다. 이 책을 늘 가까이 두고 힘들 때마다 읽겠습니다.

-신라영(40대 주부)

 

글은 그 사람입니다. 한 총리님의 글을 읽으며, 어려운 시절 곁길로 빠지지 않고 반듯하게 걸어온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그 길을 뒤따라 걸으며 큰 나무가 만들어 놓은 그늘 아래에서 쉬는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더 많은 나무들이 더불어 큰 숲을 이루기를 소원합니다.

-임형욱(시인, 출판인)




■ 차례

글을 시작하며

 

1부 결혼, 그리고 긴 이별의 시작

․ 유복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다

․ 물지게를 지는 소녀

․ 내 운명의 남자

․ 결혼, 그리고 긴 이별의 시작

․ 6개월 만에 깨어진 신혼

 

2부 결핍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 첫 면회

․ 공부에 매달리다

․ 신입사원 한명숙

․ “겨울나그네”를 들으며 견디다

․ 살림의 마술사

 

3부 무소의 뿔처럼 홀로 서다

․ 용기 있는 스승

․ 인습의 알을 깨고 나오다

․ “나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 “생과부 한명숙입니다”

․ 아버지의 실종

․ 희망을 만드는 숙달된 조교

․ 희열이 나를 일하게 한다

․ 가난도 힘이 된다

․ 취소된 면회

․ 어떤 예언

․ 내 생애 최악의 날

․ 인간이기에, 다만 인간이기에

․ “살아있다, 만세!”

․ 미친 듯이 살 일이다

․ 감옥에서 맞은 10.26

․ 크리스마스 캐럴

․ 어울려 사는 즐거움

․ 오월의 꽃잎은 바람에 날리고

․ 그림자에게 말 걸기

․ 교도관의 영어선생

․ 노란 손수건

 

4부 낡은 시대가 무너지는 소리

․ 여성운동 종합선물세트

․ 부엌에서 세상을 보다

․ 한국여성단체연합의 탄생

․ “쏘지 마! 쏘지 마!”

․ 꽃다운 목숨들, 거리에서 지다

․ 여성운동의 산맥, 가족법 개정운동

․ 가사노동의 가치는 얼마?

․ 낡은 시대가 무너지는 소리

․ 일본까지 따라온 일들

․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 일본군 위안부

․ 평화를 배우다

 

5부 한명숙, 정치인이 되다

․ 대통령에게 걸려 온 두 번째 전화

․ 남편과 아들을 두고 서울로 오다․

․ 버스 타는 정치인

․ 한명숙은 뿔 달린 여자

․ 여성의 멍에, 성희롱

․ 우는 암탉 만들기

․ 오전에는 퇴임식, 오후에는 취임식

․ 업무평가 최우수, 리더십 1위

․ 가수 한명숙이 아닌 기호 3번 한명숙입니다

․ 균형의 가치

․ 나는 그들을 용서했다

․ 나는 장악하지 않는다

․ “대추리 주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 장미꽃을 안고 낯선 집으로․208

․ 선거에서 이기고 투표에서 지다

․ 죽어도 죽지 않은 사람

․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 나는 우리 국민을 믿는다

 

* 한명숙에 관한 오해와 진실

* 연보





■ 본문 중에서(책 속으로)

'진실’이란 말에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진실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다른 수식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지금 저에게 진실을 설명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난감합니다. 이미 제 삶과 명예에 잔뜩 먹칠을 해 놓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진실을 보여줄 것인가.

결국은 제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명숙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진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한명숙이란 이름에 흠집을 내놓은 사람들을 향한 변명이 아닙니다. 이 글은 저들의 조작과 음해에도 저를 믿어주고 흔들림 없이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향한 대답입니다. “세상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5면

 

나는 서울에 올라가자마자 친정집에 들렀다. 어머니와 동생들의 신변이 걱정이 되었다. 내 우려대로 며칠 후, 우리 식구들은 어딘지 모를 데로 실려 가서 사정없이 두들겨 맞았다. 동생들은 만신창이가 되도록 얻어맞고 풀려났다.

나는 남편을 찾아 나섰다. 남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남편 소식을 알려고 헤매고 다니자 사람들은 나를 위로하기보다 피해 버렸다. 남편이 잡혀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나를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처음의 막연했던 두려움은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29면

 

아버지가 실종된 지 정확하게 일주일째 다시 집에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를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뛸 듯이 기뻤지만 덜컥 겁이 났다. 아버지를 발견한 곳이 바로 시립병원이라는 것이었다.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버지의 모습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변해 있었다. 사람이 일주일 만에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 모습에 그토록 담대하고 강건하던 어머니마저 통곡을 하셨다.

아버지는 영등포에서 고혈압으로 쓰러져 길거리에 방치되었다 결국 경찰에 의해 시립병원으로 옮겨지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직 의식불명이셨다. 의사는 깨어난다 해도 후유증이 클 것이라고 했다. 특히 기억상실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를 시립병원에서 더 큰 병원으로 옮기고 싶었지만 돈이 문제였다. 식구들의 상심이 너무 커 집안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내게 닥친 경제적, 정신적 고통으로 나는 정말 질식할 지경이었다. 병원에서는 어머니를 위로하고 집에 오면 동생들이 불쌍해 애써 명랑한 척 노력했다. 병원비 마련을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다 보면 지금의 내 모습이 너무도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누구와 툭 터놓고 의논할 사람도 없었다. 나는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소리 내어 엉엉 울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 난관을 극복해 내고야 말겠다는 고집이 치밀어 올랐다. 결코 쓰러지지 않겠다. 이 고통과 길고 긴 고독이 아무리 나를 짓이겨도 이겨낼 각오는 되어 있었다. 나는 힘들 때마다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외쳤다. “한명숙, 정신 차려! 결코 쓰러져선 안 돼. 한명숙, 넌 해 낼 수 있어.”

-68~69면

 

안대가 벗겨지고 정신을 차려보니 거긴 중앙정보부였다. 내가 끌려간 곳이 남산에 있던 대공 분실이라는 것은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갓도 없이 알전구만 달랑 달려 있는 방 안에 내팽개쳐졌다. 체포영장도 없이 불법으로 끌고 온 나를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히고 검은 안대를 풀어주었다. 인상이 신경질적이고 험악한 남자 서너 명이 부산스럽게 드나들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윽고 취조가 시작되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나는 이미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무언가 시작되는구나 싶어 정신을 바짝 차렸다. 나를 노려보던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그 노래 니가 만들었지?”

무슨 노래를 내가 만들었다는 것일까? 나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노동자는 기계인가요’, 하는 노래 니가 만들었잖아? 우리가 다 알아봤어.”

‘아, 그거였나. 역시 아카데미 교육까지 금지시키려고 하고 있구나’ 직감했다.

-84~85면

 

“한명숙, 한명숙, 힘내라!”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수인번호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 나, 한명숙을 부르고 있었다. 나를 부르는 그 소리는 겨울바람에 실려 새벽의 정적을 깨뜨리며 나의 귓전을 힘차게 울렸다. 동지들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동지들의 목소리였다. 동지들은 성탄 새벽, 교도소의 뒷산에 올라 갇혀 있는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합창했던 것이다.

조금 후 멀리서 옥에 갇힌 우리를 위해 불러 주는 동지들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성탄의 새벽을 깨우고 있었다. 나는 내 평생 그렇게 아름답고 강렬한 성탄 메시지를 들어 본 적이 없다. 한명숙! 이 이름 석 자에 담긴 동지애가 빛을 잃고 어두운 절망 속에서 좌절해 있던 나를 극적으로 소생시켰다.

-104~105면

 

종로 네거리에는 수천 명의 중무장한 전투경찰들이 늘어서 있었다. 대오를 갖춘 전경들의 위압에 눌려 시위대가 술렁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수천 명의 전경들이 열을 맞추어 우리 여성연합회 회원들 앞으로 한 발자국씩 다가왔다.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우리 여성들은 떨리는 입을 열어 단 세 글자의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쏘지 마! 쏘지 마!”

하지만 우리의 소리는 너무 작았다. 수십만 명의 구호에 묻혀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쏘지 마! 쏘지 마!”

그것은 독재와 폭력을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피맺힌 절규였다. 외침이 울음으로 바뀌어 갈 때쯤 우리의 작은 소리는 점점 메아리를 타고 있었다. 조금씩 거세지던 외침은 끝내 하늘을 찌를 듯한 함성으로 바뀌고 있었다. 종로 네거리가 “쏘지 마! 쏘지 마!” 우레와 같은 절규로 물결치고 있었다.

수십만이 외치는 함성을 뒤로한 채 우리는 한 손에 빨간 카네이션을 들고 한 발씩 전투경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피곤에 찌들어 무표정한 전경들의 가슴에 한 송이 카네이션을 달기 시작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순간의 고요를 타고 사랑과 용서가 담긴 카네이션 향기는 거기 있는 모두의 가슴에 전율로 와 닿았다. 전투경찰들 역시 평화의 향기에 취해 한동안 최루탄을 쏘지 못했다. 비록 시위대와 전경은 독재정권의 폭정으로 대치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우리의 형제이고 아들이며 살을 부비며 함께 살아가야 할 이 땅의 동포였던 것이다.

-136면

 

가족법 개정안은 통과되었다. 우리는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동성동본 금혼조항만 제외하고 우리의 안이 그대로 통과된 것이다. 언론매체에서는 한결같이 가족법이 혁명적으로 개정되었으며 이로써 우리 사회가 남녀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것임을 시사했다.

국회의 넓은 복도에서는 가족법 개정을 중심에 두고 두 개의 시대사조가 한 공간 안에서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나는 유림의 대표가 복도에 주저앉아 “우리나라는 이제 망했다”고 소리치며 통곡하는 소리였다. 다른 하나는 여성운동 대표자들이 모인 가운데 이태영 선생님이 남녀평등의 세상을 알리는 메시지를 낭독하는 소리였다.

통곡의 소리는 낡은 시대가 무너지는 소리였고, 미래의 메시지는 평등의 새 시대를 여는 소리였다. 가족법 개정은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산맥이었으며 한국의 여성들은 2005년 가족법의 기둥인 호주제를 폐지함으로써 가부장제의 높은 산맥을 여성 자신의 힘으로 넘어선 것이다.

-145면

 

나는 이제껏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있어 왔다. 내 도움을 원하는 이들을 피하지 않았다. 그곳이 지금까지는 맨손으로, 온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시민운동이었다면 앞으로는 보다 실질적으로 힘이 될 수 있는 자리로 옮겨간다는 것 외에는 달라질 것도 없었다. 특히나 여성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법적인 해결방안이 필요했다. 국회의원 스무 명의 사인을 못 받아 가족법개정안을 제출조차 못한 적도 있지 않았던가. 이제 내게 그 필요를 채워 줄 기회가 온 것이다. 그래, 이왕 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신명나게 해보자!

나는 결심을 하자마자 바로 그 이튿날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남편과 아들을 미국에 남겨 둔 채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17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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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명숙

[기소에 대한 대변인 성명]

 ‘살려 주세요 공소장’ 역사에 남을 겁니다!



  검찰이 한명숙 전 총리를 22일 기소했습니다. 이 공소장은 훗날 수많은 법학도들에게 두고두고 교과서가 될 겁니다.
  공소권 남용 가운데에서도 가장 허술하고 가장 엉성한 ‘반면교사의 공소장’으로 읽히고 또 읽힐 것입니다.

  증거도 없고, 증인도 없고, 진술의 일관성과 신빙성도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겁에 질린 병약한 70세 노인의 짜 맞추기 주장만을 바탕으로 작성된 공소장은 한국 검찰사의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

  “살려주세요, 검사님!” “저 죽을지도 모릅니다.”는 절규는 인권이 보장된 검찰청사에서 나올 얘기가 아닙니다. 정신적 육체적 고문과 협박이 자행되는 지하 조사실에나 어울릴 말입니다.

  이 시점에서 다시금 확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찰은 대체 그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어떻게 ‘혼쭐’을 낸 겁니까? 어떤 가혹행위가 있었기에 검사하고만 있는 자리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까지 염치 체면 모두 벗어던지고 그 생생한 증언과 호소가 나온 겁니까?

  매우 취약한 지위에서 검찰의 압박에 쉽게 굴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특별히 신빙할 만한 정황’이 없는 주장은 진술로서의 가치가 없습니다.

  대법원 판례도 “(진술자에게) 어떤 범죄 혐의가 있고 그 혐의에 대해 수사가 개시될 가능성이 있거나 수사가 진행 중인 경우에는 이를 이용한 협박이나 회유 등의 의심이 있어 그 진술의 증거능력이 부정되는 정도에까지 이르지 않는 경우에도 그로 인한 궁박한 처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진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아울러 살펴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공포에 질린 사람의 입을 빌어 무고한 누구를 표적으로 삼는 이런 식의 공소장은 ‘살려 주세요 공소장’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또 법무부 장관은 22일 국회에서 “경위야 어떻게 되었든 피의사실이 유출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법무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국무위원으로서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할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법무부 장관이 피의사실 공표를 인정했고 이 죄는 중대한 사안인데도 기소를 강행한 것은 잘못입니다.

  특히 법무부와 대검이 우리 측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수사팀의 부실 엉터리 수사행태를 감찰하지 않은 채 기소 단계까지 이르도록 방치한 것은 대단히 개탄스런 일입니다.

  어쨌든 이제 진실은 법원에서 공개적으로 밝혀지게 됐습니다. 
  당당하고 의연하게 재판에 임해 국민들에게 진실의 힘을 보여드릴 것입니다.


공대위 대변인 양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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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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