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일 한명숙의 자서전 "한명숙 -부드러운 열정, 세상을 품다" 출판기념회가 있었습니다.  커널뉴스가 제공한 그날 연설장면과 연설전문(노컷뉴스)입니다.







제가 지금 좀 고되고 외롭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마음과 행동과 모든 것을 같이 해 주시니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르겠다.

오늘 날씨가 많이 풀렸다.

그리고 김연아 선수가 당당하게 금메달을 딴 기분 좋은 날이다.

올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고 눈도 많이 왔다.

그런데 이제 봄이 오는 모양이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계절의 봄, 민주주의의 봄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혹독한 겨울을 뚫고 봄은 지금 우리 곁에 훌쩍 와있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봄은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여러분은 오늘 왜 여기 이렇게 많이 오셨느냐.

왜 이렇게 전국에서 많이 오셨을까, 생각해봤다.

세상이 너무 거꾸로 가니까 울화통이 터지고 답답해서 여기라도 가보자고 온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나라꼴이 자꾸 이 모양으로 가니 작은 희망이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제 생각에, 무엇보다 6.2 심판의 날 다 같이 힘을 합쳐서 한 번 멋지게 싸워보자는 뜻에서 올 거라고 본다.

제가 선 바로 이 자리가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하시기 조금 전 우리 모두에게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고 목메어 부르짖었던 곳이다.

또 2002년 노무현의 눈물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 자리다.

그때 지금 사회를 보는 문성근 씨가 참으로 감동적인 연설을 해서 노무현 대통령의 눈물이 탄생했다.

바로 그 자리가 여기다.

2010년 2월 26일 오늘도 이 자리가 바로 민주개혁진영의 승리의 외침으로 이어지는 자리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2010년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가. 민주주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부딪쳤고 정치는 길을 잃었고 공작정치만 판을 치고 있다. 언론자유는 유린당하고 있다.

공공연히 사법부에 대해서도 겁박이 이뤄진다.

남북평화는 실종됐다.

서민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절망속에 있으며 청년들은 실업에 희망이 없다.

가히 겨울 공화국이다.

과거 역사에서 나쁜 것들이란 나쁜 것들은 모두 부활하고 있다.

직시해야 한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꺼져가는 촛불처럼 시련과 위기를 맞는 이 너른 들판의 한 가운데서 여러분이나 제가 이렇게 맨 몸으로 서 있는 현실, 이것이 2010년 대한민국이다.

사실 저는 두 분 대통령을 떠나보내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좌절과 비애에 젖어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저도 이제는 저도 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쉬고 싶었다.

내 손에 힘주어 쥐고 있었던 시대적 사명이라는 바통을 젊은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트랙 밖으로 물러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다.

나약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런 바로 그 때에, 상상도 할 수 없던 시련의 화살이 갑자기 꽂혔다.

짐을 내려놓으려는 나에게 하늘의 경고 메시지가 내린 듯했다. 신탁처럼...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운명은 비켜가지 않았다.

역주행 하는 민주주의의 흐름을 되돌려 놓을 때까지는 나에겐 절망할 권리조차 없음을 깨달았다.

이것이 두 대통령의 뜻을 잇는 길, 나에게 믿음을 보여준 이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봤다.

이 땅의 현실은 저를 포함한 그 누구도, 이 시련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정연주가 겪은 시련, PD수첩이 겪은 시련, 미네르바가 겪은 시련, 촛불시민이 겪은 시련, 시민분향소 사람이 겪은 시련, 김제동이 겪는 시련, 민주노동당이 겪는 시련, 그리고 지금 한명숙이 겪는 시련... 본질은 하나다.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할 경우 민주공화국 시민 그 누구든 사찰정치의 대상이 되고 공작정치의 올가미,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좀 쉬어야지 하는 안이한 상황에서 뒤통수 맞은 상황이 부끄럽다.

그러나 제게 주어진 이 시련을 결단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아직까지 다하지 못한 사명이 남았다고, 아직 견뎌야 할 시련이 남았다고 명하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책을 쓰며 고생했다.

책을 쓰며 제 인생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10년 공직 생활을 제외하면 제 인생 대부분은 고통과 시련, 좌절과 인내의 시절이었다.

하지만 학창시절 가난이 저를 강하게 키웠다.

13년 옥바라지 동안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이해를 깊이 했다.

고문과 투옥, 참으로 힘들었다. 그런데 이 고문과 투옥이 저를 단단히 했다.

여성운동과 민주화운동이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했다.

이 일이 저를 다시 거친 들판에 세운다 피하지 않고 최전선에 우뚝 서겠다.

고통받는 모든 분들, 분노하는 모든 분들과 다시 같은 전선에 서려 한다. 그래서 한없이 영광이다.

책을 낸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련과 부딪쳤고 고통스럽지 않을 때가 없었지만 타협하거나 회피하지 않았던 인생...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걸 스스로 모질게 다지고 다졌다.

이 책은 제게 그 의미다. 여러분들에게는 그러한 약속이다.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꿈이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사람 사는 세상을 여는 꿈, 남북 평화의 시대를 여는 꿈, 일하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꿈, 그 꿈의 실현을 위해 바람찬 들판에 섰다.

시련을 뚫고 저의 역할을 기꺼이 감당하겠다.

조건이 있다. 혼자는 힘들다. 혼자는 너무 외롭다. 혼자는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차갑다. 넘어질 거 같다. 국민과 함께 여러분과 함께라면 하겠다. 두려울 게 없다.

어떤 아픔과 시련도, 여러분과 손잡고 이겨내겠다.

함께 해달라.

6.2 심판의 날, 제가 맨 앞에 서겠다.

6.2 승리의 날, 여러분과 함께 중심에 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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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숙 지음/ 신국판 / 254쪽 / 12,000원 / 2010년 2월 26일 초판 1쇄 발행
  • ISBN 978-89-89571-64-3 03810
  • 행복한책읽기 펴냄




한명숙 전 총리,‘시련의 한복판’에서 펜을 들다


한명숙 전 총리가 생애 첫 자서전을 냈다.

두 번의 국회의원과 두 번의 장관직(여성부, 환경부)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총리직 수행을 끝으로 조용히 자연인 한명숙으로 돌아가려 했던 한 전 총리가 『한명숙』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딴 자서전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노무현, 김대중 두 대통령의 서거 이후 깊은 슬픔 속에서도 묵묵히 전직 대통령의 유지를 잇는 일에만 몰두해오던 그가 펜을 들고 세상을 향해 다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이 책 『한명숙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진실’ 이란 말에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진실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다른 수식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지금 저에게 진실을 설명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난감합니다. 이미 제 삶과 명예에 잔뜩 먹칠을 해 놓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진실을 보여줄 것인가. 결국은 제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명숙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진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한명숙이란 이름에 흠집을 내놓은 사람들을 향한 변명이 아닙니다. 이 글은 저들의 조작과 음해에도 저를 믿어주고 흔들림 없이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향한 대답입니다. ‘세상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을 삶으로 증명하다


이 책에는 한 총리의 지나온 삶이 5부로 나뉘어 담겨 있다.

1부 결혼, 그리고 긴 이별의 시작에는, 사업가인 아버지와 간호사였던 어머니가 꾸리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평양에서 서울로 피난을 내려오면서부터 겪게 된 가난과,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남편이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으로 가게 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2부 결핍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감옥에 있는 남편의 옥바라지와 더불어 6남매 중 장녀로서 친정의 살림을 책임지기 위해 생업 일선에 나서는 상황이, 3부 무소의 뿔처럼 홀로 서다에는 처음에는 직장 일로서 시작한 ‘크리스챤아카데미’ 활동을 통해 서서히 이 나라의 사회문제와 여성문제를 자각하게 되고, 구습과 열배감에 젖어 있는 여성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여성 사회운동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 과정과 그 활동으로 인해 시국사범으로 감옥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당하지만, 오히려 그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며 자신을 더 단단하게 단련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4부 낡은 시대가 무너지는 소리에는 13년 반의 형기를 마치고 나온 남편과 재회한 후 가족법 개정운동과 민우회 활동을 통한 다각적이고도 체계적인 여성운동을 전개하여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여성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지막 5부 한명숙 정치인이 되다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부름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여성부, 환경부 장관을 거치며 직면했던 문제들과 이를 풀어나가는 대화와 이해의 해결방식, 그리고 한명숙 특유의‘부드러운 열정의 리더십’을 보여준다.

그리고 부기된 <한명숙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는 한명숙에 대해 잘못 알려져 있거나 세간에 드러나지 않아 오해를 사는 몇 가지 편견들에 대해 짚어준다.





■ 추천의 글

어둠이 가시지 않은 80년대, ‘여성학특강’에서 만난 한명숙 선생님, 참 멋져 보였습니다. 그런데 13년이나 옥바라지를 하셨고 당신도 수감된 적이 있다는 걸 알고는, 그저 눈을 질끈 감아야 했습니다. 다시 사람마다 삶이 무거운 시대, 우리를 감싸 안아 일으켜 세우는 한 총리님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이정희 민노당 국회의원

 

공자가 <논어>를 통해 크게 경계한 것이 바로 교언영색(巧言令色)이다. 화려한 말과 꾸민 표정으로 짐짓 거짓을 진실인 양 대하는 태도를 불인(不仁)이라 여긴 것이다. 대개 정치인들의 자서전은 이 범주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하지만 한 전 총리의 글은 이 점에서 우선 다르다. 말과 뜻이 일치하고 그 뜻의 바탕이 온유함에 있기 때문이다.

-박경철(의사 경제평론가)

 

말과 글 모두가 사람을 위해 생겨난 것, 그러므로 어떤 글이나 말도 사람의 가슴을 앞서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총리님의 글에서 인간의 따뜻한 가슴을 느낍니다.

-김제동(방송인)

 

일을 하며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주부입니다. 삶이 무척 힘들게 느껴지곤 했는데 한 총리님 자서전을 읽으니 부끄럽습니다. 이 책을 늘 가까이 두고 힘들 때마다 읽겠습니다.

-신라영(40대 주부)

 

글은 그 사람입니다. 한 총리님의 글을 읽으며, 어려운 시절 곁길로 빠지지 않고 반듯하게 걸어온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그 길을 뒤따라 걸으며 큰 나무가 만들어 놓은 그늘 아래에서 쉬는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더 많은 나무들이 더불어 큰 숲을 이루기를 소원합니다.

-임형욱(시인, 출판인)




■ 차례

글을 시작하며

 

1부 결혼, 그리고 긴 이별의 시작

․ 유복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다

․ 물지게를 지는 소녀

․ 내 운명의 남자

․ 결혼, 그리고 긴 이별의 시작

․ 6개월 만에 깨어진 신혼

 

2부 결핍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 첫 면회

․ 공부에 매달리다

․ 신입사원 한명숙

․ “겨울나그네”를 들으며 견디다

․ 살림의 마술사

 

3부 무소의 뿔처럼 홀로 서다

․ 용기 있는 스승

․ 인습의 알을 깨고 나오다

․ “나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 “생과부 한명숙입니다”

․ 아버지의 실종

․ 희망을 만드는 숙달된 조교

․ 희열이 나를 일하게 한다

․ 가난도 힘이 된다

․ 취소된 면회

․ 어떤 예언

․ 내 생애 최악의 날

․ 인간이기에, 다만 인간이기에

․ “살아있다, 만세!”

․ 미친 듯이 살 일이다

․ 감옥에서 맞은 10.26

․ 크리스마스 캐럴

․ 어울려 사는 즐거움

․ 오월의 꽃잎은 바람에 날리고

․ 그림자에게 말 걸기

․ 교도관의 영어선생

․ 노란 손수건

 

4부 낡은 시대가 무너지는 소리

․ 여성운동 종합선물세트

․ 부엌에서 세상을 보다

․ 한국여성단체연합의 탄생

․ “쏘지 마! 쏘지 마!”

․ 꽃다운 목숨들, 거리에서 지다

․ 여성운동의 산맥, 가족법 개정운동

․ 가사노동의 가치는 얼마?

․ 낡은 시대가 무너지는 소리

․ 일본까지 따라온 일들

․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 일본군 위안부

․ 평화를 배우다

 

5부 한명숙, 정치인이 되다

․ 대통령에게 걸려 온 두 번째 전화

․ 남편과 아들을 두고 서울로 오다․

․ 버스 타는 정치인

․ 한명숙은 뿔 달린 여자

․ 여성의 멍에, 성희롱

․ 우는 암탉 만들기

․ 오전에는 퇴임식, 오후에는 취임식

․ 업무평가 최우수, 리더십 1위

․ 가수 한명숙이 아닌 기호 3번 한명숙입니다

․ 균형의 가치

․ 나는 그들을 용서했다

․ 나는 장악하지 않는다

․ “대추리 주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 장미꽃을 안고 낯선 집으로․208

․ 선거에서 이기고 투표에서 지다

․ 죽어도 죽지 않은 사람

․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 나는 우리 국민을 믿는다

 

* 한명숙에 관한 오해와 진실

* 연보





■ 본문 중에서(책 속으로)

'진실’이란 말에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진실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다른 수식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지금 저에게 진실을 설명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난감합니다. 이미 제 삶과 명예에 잔뜩 먹칠을 해 놓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진실을 보여줄 것인가.

결국은 제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명숙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진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한명숙이란 이름에 흠집을 내놓은 사람들을 향한 변명이 아닙니다. 이 글은 저들의 조작과 음해에도 저를 믿어주고 흔들림 없이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향한 대답입니다. “세상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5면

 

나는 서울에 올라가자마자 친정집에 들렀다. 어머니와 동생들의 신변이 걱정이 되었다. 내 우려대로 며칠 후, 우리 식구들은 어딘지 모를 데로 실려 가서 사정없이 두들겨 맞았다. 동생들은 만신창이가 되도록 얻어맞고 풀려났다.

나는 남편을 찾아 나섰다. 남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남편 소식을 알려고 헤매고 다니자 사람들은 나를 위로하기보다 피해 버렸다. 남편이 잡혀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나를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처음의 막연했던 두려움은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29면

 

아버지가 실종된 지 정확하게 일주일째 다시 집에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를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뛸 듯이 기뻤지만 덜컥 겁이 났다. 아버지를 발견한 곳이 바로 시립병원이라는 것이었다.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버지의 모습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변해 있었다. 사람이 일주일 만에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 모습에 그토록 담대하고 강건하던 어머니마저 통곡을 하셨다.

아버지는 영등포에서 고혈압으로 쓰러져 길거리에 방치되었다 결국 경찰에 의해 시립병원으로 옮겨지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직 의식불명이셨다. 의사는 깨어난다 해도 후유증이 클 것이라고 했다. 특히 기억상실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를 시립병원에서 더 큰 병원으로 옮기고 싶었지만 돈이 문제였다. 식구들의 상심이 너무 커 집안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내게 닥친 경제적, 정신적 고통으로 나는 정말 질식할 지경이었다. 병원에서는 어머니를 위로하고 집에 오면 동생들이 불쌍해 애써 명랑한 척 노력했다. 병원비 마련을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다 보면 지금의 내 모습이 너무도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누구와 툭 터놓고 의논할 사람도 없었다. 나는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소리 내어 엉엉 울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 난관을 극복해 내고야 말겠다는 고집이 치밀어 올랐다. 결코 쓰러지지 않겠다. 이 고통과 길고 긴 고독이 아무리 나를 짓이겨도 이겨낼 각오는 되어 있었다. 나는 힘들 때마다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외쳤다. “한명숙, 정신 차려! 결코 쓰러져선 안 돼. 한명숙, 넌 해 낼 수 있어.”

-68~69면

 

안대가 벗겨지고 정신을 차려보니 거긴 중앙정보부였다. 내가 끌려간 곳이 남산에 있던 대공 분실이라는 것은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갓도 없이 알전구만 달랑 달려 있는 방 안에 내팽개쳐졌다. 체포영장도 없이 불법으로 끌고 온 나를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히고 검은 안대를 풀어주었다. 인상이 신경질적이고 험악한 남자 서너 명이 부산스럽게 드나들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윽고 취조가 시작되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나는 이미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무언가 시작되는구나 싶어 정신을 바짝 차렸다. 나를 노려보던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그 노래 니가 만들었지?”

무슨 노래를 내가 만들었다는 것일까? 나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노동자는 기계인가요’, 하는 노래 니가 만들었잖아? 우리가 다 알아봤어.”

‘아, 그거였나. 역시 아카데미 교육까지 금지시키려고 하고 있구나’ 직감했다.

-84~85면

 

“한명숙, 한명숙, 힘내라!”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수인번호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 나, 한명숙을 부르고 있었다. 나를 부르는 그 소리는 겨울바람에 실려 새벽의 정적을 깨뜨리며 나의 귓전을 힘차게 울렸다. 동지들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동지들의 목소리였다. 동지들은 성탄 새벽, 교도소의 뒷산에 올라 갇혀 있는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합창했던 것이다.

조금 후 멀리서 옥에 갇힌 우리를 위해 불러 주는 동지들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성탄의 새벽을 깨우고 있었다. 나는 내 평생 그렇게 아름답고 강렬한 성탄 메시지를 들어 본 적이 없다. 한명숙! 이 이름 석 자에 담긴 동지애가 빛을 잃고 어두운 절망 속에서 좌절해 있던 나를 극적으로 소생시켰다.

-104~105면

 

종로 네거리에는 수천 명의 중무장한 전투경찰들이 늘어서 있었다. 대오를 갖춘 전경들의 위압에 눌려 시위대가 술렁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수천 명의 전경들이 열을 맞추어 우리 여성연합회 회원들 앞으로 한 발자국씩 다가왔다.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우리 여성들은 떨리는 입을 열어 단 세 글자의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쏘지 마! 쏘지 마!”

하지만 우리의 소리는 너무 작았다. 수십만 명의 구호에 묻혀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쏘지 마! 쏘지 마!”

그것은 독재와 폭력을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피맺힌 절규였다. 외침이 울음으로 바뀌어 갈 때쯤 우리의 작은 소리는 점점 메아리를 타고 있었다. 조금씩 거세지던 외침은 끝내 하늘을 찌를 듯한 함성으로 바뀌고 있었다. 종로 네거리가 “쏘지 마! 쏘지 마!” 우레와 같은 절규로 물결치고 있었다.

수십만이 외치는 함성을 뒤로한 채 우리는 한 손에 빨간 카네이션을 들고 한 발씩 전투경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피곤에 찌들어 무표정한 전경들의 가슴에 한 송이 카네이션을 달기 시작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순간의 고요를 타고 사랑과 용서가 담긴 카네이션 향기는 거기 있는 모두의 가슴에 전율로 와 닿았다. 전투경찰들 역시 평화의 향기에 취해 한동안 최루탄을 쏘지 못했다. 비록 시위대와 전경은 독재정권의 폭정으로 대치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우리의 형제이고 아들이며 살을 부비며 함께 살아가야 할 이 땅의 동포였던 것이다.

-136면

 

가족법 개정안은 통과되었다. 우리는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동성동본 금혼조항만 제외하고 우리의 안이 그대로 통과된 것이다. 언론매체에서는 한결같이 가족법이 혁명적으로 개정되었으며 이로써 우리 사회가 남녀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것임을 시사했다.

국회의 넓은 복도에서는 가족법 개정을 중심에 두고 두 개의 시대사조가 한 공간 안에서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나는 유림의 대표가 복도에 주저앉아 “우리나라는 이제 망했다”고 소리치며 통곡하는 소리였다. 다른 하나는 여성운동 대표자들이 모인 가운데 이태영 선생님이 남녀평등의 세상을 알리는 메시지를 낭독하는 소리였다.

통곡의 소리는 낡은 시대가 무너지는 소리였고, 미래의 메시지는 평등의 새 시대를 여는 소리였다. 가족법 개정은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산맥이었으며 한국의 여성들은 2005년 가족법의 기둥인 호주제를 폐지함으로써 가부장제의 높은 산맥을 여성 자신의 힘으로 넘어선 것이다.

-145면

 

나는 이제껏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있어 왔다. 내 도움을 원하는 이들을 피하지 않았다. 그곳이 지금까지는 맨손으로, 온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시민운동이었다면 앞으로는 보다 실질적으로 힘이 될 수 있는 자리로 옮겨간다는 것 외에는 달라질 것도 없었다. 특히나 여성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법적인 해결방안이 필요했다. 국회의원 스무 명의 사인을 못 받아 가족법개정안을 제출조차 못한 적도 있지 않았던가. 이제 내게 그 필요를 채워 줄 기회가 온 것이다. 그래, 이왕 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신명나게 해보자!

나는 결심을 하자마자 바로 그 이튿날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남편과 아들을 미국에 남겨 둔 채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17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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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명숙
2010/02/24 05:27

바보들의 행진
-이광재 출판기념회에 부쳐


제가 옛날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저희 남편이 13년 반 동안 옥살이를 하고 나와서 저에게 했던 말이 “이 여자 바보 아니냐”는 말이었습니다. 혼인 신고도 안한 새댁의 몸으로 아이도 없이 13년 반을 일편단심으로 기다려 준 아내에 대한 감사 어린 탄식이었겠지요. 

젊은 날 남편에게서 받은 바보 인증 때문이었는지 바보 대통령과 역사적인 한 시대를 함께하는 인연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보 대통령과 정치적 역정을 함께 해 오고, 그의 바보정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이광재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광재 의원이 출판 기념회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난 5월 봉하에서의 그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누군들 그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겠습니까. 한없이 슬퍼하고 한없이 자책하면서, 제 어깨 위에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던 그를 붙들고 함께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눈물을 닦고  또 한사람의 바보가 되겠다고 다시 우리 앞에 서 있으니, 믿음직스럽고, 마음 든든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요즘 걱정이 참 많습니다.

개인 한명숙으로야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마는,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깊은 우려와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찰과 경찰이 정권의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멀쩡한 세종시를 가지고 평지풍파는 왜 일으킵니까?
국민들 살림살이 나아지게 하겠다던 약속은 이미 휴지조각이 되었습니다.
4대강은 돈 먹는 하마가 되어 서민생활을 옥죄고 있습니다.
무소불위의 국정운영은 국민을 더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바보들에게 할 일이 생겼습니다.
등록금, 과외비 걱정에 등골이 휘어지는 학부모를 위하여
취직 걱정에 졸업식이 우울한 청년들을 위하여
이른 아침, 잠에서 덜 깬 아이를 들쳐업고 놀이방으로 종종 걸음치는 엄마들을 대신하여
전세 값, 물가고에 불면의 날을 보내고 있을 가장들을 대신하여
바보들이 행진을 시작하려 합니다.

지난 2년의 경험은 더 이상 말로는 안 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이제 살아남은 바보들의 행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이광재가 서 있습니다.
이광재가 앞장서는 바보들의 행진을 지켜봐 주십시오.
그리하여, 충청도에서, 서울에서, 경기에서 나아가 전국에서
바보들이 행진할 민주주의 올레길에서 우리 다 같이 만납시다.


2010년 2월24일 한명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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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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